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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영화 리뷰 (집밥의 기억, 음식과 감정, 집밥의 위로)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된장찌개라면, 믿기시겠습니까? 저는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된장〉을 다 보고 나니 그 질문이 완전히 달라 보였습니다. 어떤 음식은 맛으로 기억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의 시간과 마음으로 기억된다는 걸, 이 영화가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집밥의 기억: 당신에게 된장찌개는 어떤 음식입니까

영화 〈된장〉은 2010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입니다. 방송 PD 최유진이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을 취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사형수가 죽기 전 원한 음식이 된장찌개였고, 그 찌개를 끓인 장혜진이라는 여인의 흔적을 쫓으면서 한 사람의 사랑과 기다림, 상실의 이야기가 천천히 드러납니다. 줄거리만 보면 미스터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보면 음식이 주인공인 영화에 가깝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나는 된장찌개를 당연하게 여겼을까"였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거의 매일 먹던 음식이었는데,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밖에서 사 먹는 떡볶이나 치킨이 훨씬 설레는 음식이었고, 집밥은 그냥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평범함 자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음식 심리학(food psychology) 분야에서는 음식이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서 기억과 정서를 저장하는 매개체(medium)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특정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감정은 음식 자체보다 그 음식을 먹었던 상황, 함께 있던 사람, 그 시절의 분위기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감각 기억(sensory memory)이라고 하는데, 감각 기억이란 냄새, 맛, 질감 같은 감각 자극이 특정 경험과 결합되어 뇌에 저장되는 기억 방식을 말합니다. 된장의 구수한 냄새가 유독 강한 후각 자극을 남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향미 지각과 기억 연구(Flavor: A brief history, Small & Prescott)에 따르면, 음식의 맛과 냄새는 뇌의 편도체(amygdala)와 해마(hippocampus)에 직접 연결되어 감정적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자극제 역할을 합니다. 쉽게 풀면, 된장찌개 냄새 하나가 어릴 적 부엌 풍경을 통째로 끌고 오는 이유가 뇌 구조에 있다는 겁니다. 영화 〈된장〉이 그 찌개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음식과 감정: 왜 힘들 때 집밥이 생각나는 걸까요

된장찌개가 특별해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한 번 생각해보셨습니까? 저는 몸이 심하게 아팠던 어느 겨울에 처음으로 그걸 실감했습니다. 그때 먹고 싶었던 건 뭔가 근사한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끓여준 것 같은, 걸쭉하고 짭조름한 된장찌개 한 그릇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들었을 때 저 스스로도 놀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집밥을 그리워하는 사람인 줄 몰랐거든요.

영화 속 사형수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봅니다. 마지막 순간에 떠올린 음식이 된장찌개였다는 건, 그 찌개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안전하고 따뜻했던 순간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걸 영양학적으로만 보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서적 위안(emotional comfort)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서적 위안이란 특정 자극이 심리적 안정감과 따뜻함을 회복시켜주는 현상을 뜻하는데, 음식은 그 자극 중에서도 가장 원초적이고 강력한 축에 속합니다.

한국인에게 된장찌개가 갖는 위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음식으로, 특별한 날보다 평범한 날의 식탁에 더 자주 오릅니다.
  2.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접했기 때문에 감각 기억이 가장 깊게 형성된 음식 중 하나입니다.
  3. 발효 식품(fermented food)으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맛이 있어, 만든 사람의 정성과 시간이 느껴지는 음식입니다. 발효 식품이란 미생물의 작용으로 재료가 변화하면서 독특한 풍미와 영양이 만들어지는 식품을 말합니다.
  4. 간단한 재료만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화려함보다는 솔직함이 담긴 음식입니다.

영화는 이 네 번째 특성을 가장 잘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장혜진의 된장찌개가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이 된 건 화려한 기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담긴 솔직한 마음, 꾸밈없는 정성이 한 사람의 삶에 깊이 박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되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자료(출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를 보면, 된장찌개는 한국인이 가장 자주 섭취하는 국물 요리 1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상에서 반복되는 음식이고, 그 반복이 기억을 만들고, 기억이 정서를 만든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 논리이기도 합니다.

집밥의 위로: 한 끼가 하루를 바꿀 수 있을까요

영화 〈된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면 할 말이 없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미스터리로 시작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멜로(melodrama)의 감성이 강해지는 구조가 조금 아쉬웠습니다. 멜로드라마란 감정적 호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 형식을 말하는데, 이 영화는 그 색채가 짙어지면서 장르적 긴장감이 다소 풀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된장찌개 하나에 지나치게 많은 상징을 얹다 보니 현실적인 설득력보다 감정이 앞서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영화를 좋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보고 나서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뭐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건 어떤 잘 만든 상업 영화도 제게 던져주지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그 질문 하나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라고 봅니다.

영화를 본 뒤로 저도 조금 달라진 게 있습니다. 바쁜 날에도 가능하면 제대로 된 국 하나는 끓여 먹으려고 합니다. 배달 음식이 편하다는 건 알지만, 제 경험상 그 작은 차이가 저녁 한때의 분위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들더라고요. 식치(食治)라는 말이 있습니다. 식치란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는 개념으로, 한의학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표현입니다. 된장찌개 한 그릇이 그 식치의 가장 오래된 형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 영화 이후로 자꾸 듭니다.

결국 〈된장〉은 음식 영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식탁의 감각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이 된장찌개였다는 설정은 처음엔 이상해 보였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 저녁,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못 끓였던 된장찌개를 한 번 만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의외로 그 한 그릇이 지금 필요한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koreanfilm.or.kr/eng/films/index/filmsView.jsp?movieCd=20101004 https://www.atfis.or.kr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Flavor%3A-A-brief-history-Small-Prescott/b20cce914b5a13f33b2feab5bb27e3e0d09e7e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