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개봉하자마자 화제를 모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서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꽤 복잡한 감정이 남았습니다. 기생충 이후 처음 만나는 장편인 데다 헐리우드 자본과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봉준호는 헐리우드에서도 봉준호였을까요.
줄거리와 기본 설정 — 클론 노동자라는 아이디어
미키 17의 핵심 설정은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는 개념입니다. 익스펜더블이란 우주 식민지 개척 임무에서 죽어도 복제를 통해 부활할 수 있는 소모형 인간 노동자를 말합니다. 주인공 미키 반스(로버트 패틴슨)는 익스펜더블로 계약해 우주선에 탑승하고, 위험 임무를 반복하며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합니다.
이 설정 자체는 분명히 매력적입니다. 에드워드 애슈턴의 원작 소설 미키7을 바탕으로 하는데, 봉준호는 여기서 캐릭터 수를 17로 늘리며 복제와 정체성의 혼란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죽음과 재탄생이 노동계약의 조건이 되는 세계라는 상상력은 단순한 공상과학이 아니라 오늘날 비정규직·소모품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직접 겨냥하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에 대한 정보는 [교보문고 도서 정보](https://product.kyobobook.co.k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핵심 설정 요약:
- 익스펜더블: 사망 시 기억을 유지한 채 새 육체로 재생성되는 소모형 계약직 인간
- 미키가 임무 중 사망하지 않아 두 개체(미키 17, 미키 18)가 동시에 존재하게 됨
- 지도자 케네스 마샬(마크 러팔로)은 전형적인 파시스트형 정치인으로 등장
## 연출의 강점과 명백한 한계
봉준호의 연출력 자체를 의심할 이유는 없습니다. 색채 대비, 공간의 위계를 통한 계급 묘사, 유머와 공포를 동시에 가져가는 장르 혼합 능력 — 이런 기술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납니다. 우주선 내부의 상하층 구조가 기생충의 지하·지상·반지하를 연상시키는 것도 의도된 문법입니다.
다만 문제는 러닝타임 관리와 캐릭터 동기입니다. 미키 17과 미키 18의 공존 상황이 2막에서 너무 오래 유지되면서 긴장감이 풀립니다. 영화에서 내러티브 긴장감이란 관객이 "다음에 어떻게 될까"를 묻게 만드는 힘인데, 중반부에 이 질문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는 뛰어나지만, 두 미키를 구분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코미디 쪽으로 쏠려 주제의 무게감을 희석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마크 러팔로의 캐릭터는 더 직접적인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캐리커처(caricature), 즉 현실적 개연성보다 특정 성격을 과장해 희화화한 묘사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기생충의 박 사장처럼 씁쓸한 여운을 남기지 못하고 그냥 우스꽝스러운 악인으로 끝나버립니다. 풍자가 날카로우려면 찌르는 대상이 실제처럼 느껴져야 합니다.
## 기생충 이후 봉준호에게 거는 기대와 현실
솔직히 말해 기생충 이후 팬들이 봉준호에게 거는 기대치는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 다음에 무엇을 내놓더라도 "기생충만 못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미키 17을 순수하게 평가하려면 이 압력을 먼저 걷어내야 합니다.
그 전제 위에서 보면, 미키 17은 결함이 있지만 진지하게 논쟁할 만한 작품입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자본과 생명 경시를 주제로 삼는 긴장 관계는 분명히 흥미롭습니다. 다만 봉준호 본인이 과거에 한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장르의 규칙을 따르면서 그 안에서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의 방법론이라면, 이번엔 그 균열이 충분히 깊지 않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에 대한 정보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https://www.kmdb.or.kr)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이런 분에게 추천하는 이유
미키 17이 모든 관객에게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닐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분들에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1. SF 장르를 좋아하지만 단순한 액션 이상을 원하는 관객
2. 노동·계급 문제를 영화라는 매체로 접근해보고 싶은 분
3.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 스펙트럼이 궁금한 분
4. 봉준호의 연출 문법을 공부하고 싶은 영화 지망생이나 영화 팬
5. 기생충을 재미있게 봤지만 비교 없이 새 작품 자체를 즐기고 싶은 분
미키 17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소모품이 된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주제를 오락의 형식으로 다루려는 시도 자체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영화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미키 17은 그 질문만큼은 제대로 던졌습니다. 다음 작품에서 봉준호가 그 질문에 더 날카로운 대답을 내놓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