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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는 여자 (노년 고립, 돌봄 공백, 고령화 사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노년의 외로움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죽여주는 여자〉는 2016년 이재용 감독이 연출하고 윤여정이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서울 도심 공원에서 살아가는 65세 여성 소영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글을 쓰게 만든 이유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노년 고립의 실제 풍경

이 영화에서 소영은 단순히 가난한 노인이 아닙니다. 그는 병원에 갔다가 혼자 남겨진 코피노 아이를 발견하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 아이를 자신의 공간으로 데려옵니다. 코피노(Kopino)란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지칭하는 말로, 아버지로부터 버려진 경우가 많아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영 자신도 그 사각지대 안에 있으면서, 또 다른 사각지대의 존재를 끌어안는 장면은 제가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영화 속 노년 남성들은 아프고, 가난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고립(social isolation)이라는 개념입니다. 사회적 고립이란 개인이 사회적 관계망에서 실질적으로 단절된 상태를 뜻하는데, 단순히 혼자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가족이 있어도 연락이 끊기고, 이웃이 있어도 서로 모른 척 지내는 상황이 바로 고립입니다. 영화는 이 상태를 설명하는 대신, 인물들의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그게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 자료에 따르면(출처: 한국영상자료원) 이 작품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소개된 작품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111분짜리 영화입니다. 단순한 소재 영화가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은 작품으로 인정받은 셈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영화의 무게를 더 분명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돌봄 공백, 개인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꽤 오래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소영이 처한 상황을 "그 사람 사정이 그런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돌봄 공백(care gap)이란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제도적 또는 관계적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소영과 영화 속 노인들이 정확히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영화를 돌봄 공백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반대로 "개인의 선택이 쌓인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젊을 때 더 준비했어야 했고, 가족 관계를 더 잘 유지했어야 했다는 식입니다. 저는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출처: 보건복지부)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전국적으로 200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상당수가 만성질환과 경제적 빈곤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를 보면 개인의 준비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영화가 소영을 쉽게 동정하거나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관객이 소영의 행동을 불편하게 느끼더라도, 그 불편함의 원인이 소영 개인인지 아니면 그를 그 자리에 놓아둔 사회인지를 스스로 묻게 만듭니다. 그 거리감이 이 영화를 단순한 신파나 고발 영화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외면해온 것들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사회를 말합니다. 한국은 이미 이 단계를 지나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래 사는 사회가 된 것은 분명 의료 기술과 생활 수준이 높아진 결과이지만, 문제는 오래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같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부모 세대의 외로움을 깊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젊고 바쁠 때는 당장 오늘을 버티는 일이 더 크게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돈보다 먼저 줄어드는 것이 관계가 아닐까. 직장이 없어지고, 친구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자녀는 멀리 살고, 전화를 걸 상대가 점점 없어지는 상황. 그게 어쩌면 빈곤보다 더 빠르게 오는 상실일 수 있습니다.

오래 사는 삶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 저 나름대로 정리해봤습니다.

  1. 경제적 안전망: 국민연금, 노후 저축, 의료비 대비 등 재정적 준비는 기본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2. 관계망 유지: 은퇴 이후에도 연결될 수 있는 커뮤니티나 사회적 관계를 미리 쌓아두는 것이 실질적인 고립 예방이 됩니다.
  3. 돌봄 제도 접근성: 노인 장기요양보험 같은 공적 돌봄 제도가 실제로 필요한 사람에게 닿고 있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사회 전체가 계속 점검해야 합니다.
  4. 존엄 있는 마무리: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나이 들고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 목록을 만들면서 저는 솔직히 좀 부끄러웠습니다. 이 중 제가 실제로 생각해본 항목이 첫 번째밖에 없었거든요.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로 미뤄뒀습니다. 그게 아마 많은 사람이 노년을 대하는 방식일 것입니다.

윤여정이 소영을 연기한다는 것의 의미

〈죽여주는 여자〉에서 윤여정의 연기는 설명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과하지 않은데 계속 마음에 걸립니다. 소영은 강하거나 지혜롭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무력한 인물도 아닙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그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묘사가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콘텐츠에서 노인은 두 가지 방식으로만 그려진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따뜻하고 지혜로운 어른이거나, 아니면 힘없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거나. 그런데 실제 노년은 그 둘 중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소영처럼 스스로 생존하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돌보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단순히 판단되기 어려운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윤여정은 그 복잡함을 말이 아닌 표정과 행동으로 전달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단순히 "어두운 영화"라고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노년 묘사(representation of aging)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미디어나 예술에서 노인을 어떻게 재현하느냐의 문제로, 어떤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느냐가 사회 전체의 노인에 대한 인식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죽여주는 여자〉는 그 재현의 방식을 바꾼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보기 편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정직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뭔가 결론이 딱 나오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솔직한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사는 사회에서 외로움은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에 쉬운 답은 없습니다. 다만 지금 내 주변에 나이 든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나 자신은 어떤 노년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 질문을 한 번쯤 꺼내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죽여주는 여자〉는 그 질문을 꺼내기에 불편하지만 정직한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