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른보다 단순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영화 〈우리들〉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초등학교 교실 안에도 서열이 있고, 눈치가 있고, 누군가를 살아남기 위해 밀어내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게 어른의 세계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라는 작은 사회, 그 안의 관계 역학
영화 〈우리들〉은 윤가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2016년 6월에 개봉한 드라마입니다. 러닝타임 94분, 전체 관람가라는 정보만 보면 아이들을 위한 가벼운 영화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면 가볍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지극히 평범한 초등학교 교실입니다. 따돌림을 당하던 선은 방학식 날 전학생 지아를 만나고, 두 아이는 여름 내내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개학 후 지아가 갑자기 선을 멀리하면서 이야기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줄거리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가 그리는 것은 아이들 사이의 관계 역학(Relationship Dynamics)입니다. 관계 역학이란 집단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 역학은 나이와 무관하게 작동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 작품을 초등학교라는 공간을 하나의 사회 구조로 바라본 영화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아카이브). 그 시선이 맞습니다. 교실 안에는 인기 있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 옆에 붙으려는 아이가 있고,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점심을 혼자 먹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 구조는 어른들의 직장이나 조직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무리에서 밀려날까 봐 입을 다물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냥 소심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일종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선이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행동도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그냥 외로웠고,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었을 뿐입니다.
따돌림은 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는가
많은 분들이 따돌림이라고 하면 직접적인 폭력이나 욕설, 노골적인 배제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보여주는 따돌림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따돌림은 표정 하나, 자리 하나, 무시 한 번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형태를 관계적 공격성(Relational Agg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관계적 공격성이란 신체적 폭력 없이도 관계를 무기로 삼아 상대를 고립시키거나 상처 입히는 행동을 말합니다. 소문을 퍼뜨리거나, 무리에서 슬쩍 배제하거나, 눈을 마주치지 않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런 형태의 공격성은 여아들 사이에서 더 자주 관찰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NCBI 관련 연구 자료).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장면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아가 선에게 아무 설명 없이 차갑게 돌아서는 순간, 선은 무엇이 잘못된 건지조차 모릅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관계가 끊어지는 경험, 그 감각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화가 명확한 가해자를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불만을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정직한 묘사입니다. 실제 아이들의 관계에는 소속감(Sense of Belonging), 즉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을 지키려는 욕구가 뒤엉켜 있습니다. 소속감이 위협받으면 사람은, 심지어 아이도, 다른 누군가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지아도 그랬던 겁니다. 나쁜 아이라서가 아니라, 무서웠던 겁니다.
이 영화에서 아이들의 관계가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집단 내 서열과 인기 구조가 어른의 조직 문화와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 따돌림이 신체적 폭력이 아닌 관계 조작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른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합니다.
- 아이들은 소속감 유지를 위해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스스로 억제하는 자기검열(Self-Censorship) 행동을 보입니다.
- 관계의 변화가 언어가 아닌 태도와 표정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피해 아이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어른이 이 영화에서 실제로 얻을 수 있는 것
〈우리들〉은 아이들의 이야기이지만, 저는 이 영화가 어른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 직장이나 인간관계에서 어딘가 소외된 느낌을 받는 분, 또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왜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분에게 이 영화가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른들은 종종 "애들이 무슨 고민이 있겠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아이에게 친구 한 명의 말투 변화는 하루 전체를 흔드는 사건입니다. 점심시간에 누구 옆에 앉느냐가 그 아이의 학교생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이걸 작게 보는 순간, 아이는 자기 감정을 말할 통로를 잃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도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는가. 누군가를 밀어낸 적은 없었는가. 소외된 친구를 못 본 척한 적은 없었는가. 그 질문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이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미덕(美德)은 답을 주지 않는 데 있습니다. 미덕이란 도덕적으로 좋은 성품이나 장점을 뜻하는데, 이 영화는 선악을 나누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관객이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
빠른 전개와 명확한 결말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큰 사건 없이 표정과 행동으로만 감정을 쌓아가는 방식은, 분명히 모든 관객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의 관계 상처는 대부분 극적이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설명이 없고,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지금 아이 관계 문제로 걱정이 많으신 분들께는 이 영화를 아이와 함께 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보고 난 후에 "영화 속 선이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라고 한 번만 물어봐 주세요. 그 대화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조용하고 정확한 안내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