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리뷰 — 사랑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마이크 니콜스 (Mike Nichols) 감독 / 2004년 / 영국-미국 로맨스 드라마
| 제목 | 클로저 (Closer) |
| 감독 | 마이크 니콜스 (Mike Nichols) |
| 개봉 | 2004년 12월 3일 (미국), 한국 2005년 1월 |
| 장르 | 로맨스, 드라마 |
| 상영 시간 | 104분 |
| 수상 |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클라이브 오웬), 여우조연상 (나탈리 포트만) |
| 원작 | 패트릭 마버 동명 연극 (1997) |
이 영화를 다시 꺼낸 이유
클로저를 처음 본 건 대학생 때였다. 그땐 "진짜 잔인한 영화다"라는 인상만 남았다. 20대 초반에는 이 영화의 인물들이 그냥 나쁜 사람들처럼 보였다. 왜 저렇게까지 서로를 할퀴는지 이해가 안 됐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봤다. 그랬더니 완전히 다른 영화였다. 그들이 나쁜 게 아니었다. 그냥 솔직한 거였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하는 것들 — 집착, 소유욕, 배신, 그리고 진실이라는 무기 — 을 이 영화는 한 치의 미화도 없이 보여준다. 두 번째 관람이 끝나고 한동안 불편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연애 중에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연애 중일 때 봐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영화다.
줄거리 — 네 사람, 두 커플, 그리고 끝없는 엇갈림
런던. 작가 지망생 댄(주드 로)은 거리에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얼마 후 댄은 사진작가 안나(줄리아 로버츠)에게 매료되고, 안나는 피부과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와 결혼한다. 이 네 사람은 서로 얽히고 배신하고 이별하고 다시 돌아온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흐르지만 장면과 장면 사이에 긴 공백이 있다.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건너뛰고, 관계가 이미 변한 뒤의 순간들만 보여준다. 이 구조가 영화의 핵심 중 하나다. 사랑은 시작보다 균열의 순간이 훨씬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
— 앨리스(나탈리 포트만)가 댄에게
네 인물 —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망가뜨린다
스트리퍼 출신,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감추는 인물. 가장 약해 보이지만 결국 가장 단단하다.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지킨다. 나탈리 포트만이 이 역할로 커리어 전환점을 만들었다.
낭만적 사랑을 믿지만 실제로는 자기중심적인 인물. 진심이라고 느끼는 순간마다 배신한다. 가장 공감하기 어렵지만,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 있는 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성적이고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우유부단한 인물. 두 남자 사이에서 끝까지 선택을 미룬다. 줄리아 로버츠가 평소 이미지를 탈피해 불완전한 인간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날 것의 인물. 배신당한 분노를 감추지 않고, 진실을 요구하며, 그 진실로 상대를 파괴한다. 잔인하지만 가장 솔직하다. 클라이브 오웬의 최고 연기.
이 영화는 대사가 전부다
원작이 연극이라는 게 확연히 느껴진다. 이 영화의 힘은 100% 대사에서 나온다. 영상이 아름답지도 않고, 음악이 압도적이지도 않다. 그냥 네 사람이 말한다. 그런데 그 말들이 칼처럼 꽂힌다. 특히 래리와 안나, 래리와 앨리스의 대화 장면들은 두 번 다시 보기 불편할 정도로 날카롭다.
솔직한 비판 —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들
첫째,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네 인물 모두 어느 순간 나쁜 선택을 한다.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가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강점이자 가장 큰 진입 장벽이다. 감정 이입할 대상 없이 104분을 버티는 건 쉽지 않다. 처음 보는 관객 중 "왜 이런 사람들 이야기를 봐야 하지?" 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둘째, 연극적 한계가 가끔 보인다. 대사 중심의 구조가 강점이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영화가 아니라 무대를 보는 느낌이 든다. 특히 공간 전환이 거의 없이 두 사람이 마주보고 대화만 하는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단조롭다.
셋째, 앨리스 캐릭터는 더 깊어질 수 있었다.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앨리스의 내면이 충분히 열리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터 그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건 느껴지지만, 마지막 반전을 위해 의도적으로 캐릭터를 납작하게 유지한 느낌이 있다. 반전의 충격은 크지만 그만큼 앨리스를 제대로 알 기회를 잃는다.
마치며 — 이 영화는 나이가 들수록 더 아프다
처음 봤을 때는 "저 사람들은 왜 저러지"가 먼저였다. 다시 봤을 때는 "나도 저런 적 있었는데"가 먼저였다. 클로저는 사랑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동시에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지를 렌즈 앞에 세운다. 불편한 영화다. 그래서 정직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