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리뷰 — 삶의 순환을 물 위에 그린 영화
김기덕 감독 / 2003년 / 한국 아트하우스 드라마
| 제목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Spring, Summer, Fall, Winter... and Spring) |
| 감독 | 김기덕 |
| 개봉 | 2003년 9월 19일 (한국) |
| 장르 | 드라마, 아트하우스 |
| 상영 시간 | 103분 |
| 수상 |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CICAE상, 국제비평가협회상 |
| 촬영지 | 경상북도 주왕산 주산지 (물 위 사찰 세트) |
한국인이 정작 가장 모르는 한국 영화
이상한 일이다. 이 영화는 독일에서, 프랑스에서, 미국에서 "한국 영화 하면 반드시 봐야 할 작품"으로 꼽힌다. 시네마테크 큐레이터들이 아시아 영화 특집 상영 때 빠뜨리지 않는 이름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봤어?" 하고 물으면 "그게 뭐야?"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나도 오래 미뤄뒀다. 김기덕이라는 이름에 달린 논란들이 선뜻 손이 가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다 해외 영화 커뮤니티에서 이 영화가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걸 보고, 작품과 감독을 분리해서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
보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아름답고, 조용하고, 폭력적이고, 슬프고, 또 평화로웠다. 한 편의 영화 안에 이렇게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줄거리 — 한 인간의 생애를 사계절로 나누다
배경은 산속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사찰이다. 늙은 스님과 어린 동자승이 그곳에서 살아간다.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의 다섯 챕터로 나뉘며, 각각의 계절은 한 인간 삶의 시기를 상징한다.
봄에는 장난스럽고 잔인한 어린 시절이 있다. 여름에는 욕망과 사랑이 찾아온다. 가을에는 그 욕망이 부른 파국과 죄가 온다. 겨울에는 참회와 고행이 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면 — 순환이 시작된다.
— 영화 속 늙은 스님이 동자승에게 쓴 글귀
다섯 챕터 — 계절이 곧 삶이다
물고기, 개구리, 뱀에게 돌을 묶어 놀리는 어린 동자승. 악의 없는 잔인함. 스님은 아무 말 없이 보여줄 뿐이다. 가장 짧고, 가장 불편하고, 가장 솔직한 챕터.
사찰에 요양 온 소녀와 청년 동자승의 사랑. 금지된 감정, 육체, 그리고 탈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험한 계절. 스님은 이미 알고 있다.
세상으로 나갔던 청년이 살인자가 되어 돌아온다. 세속이 그를 망가뜨렸는지, 처음부터 그 안에 있던 것이 터진 것인지. 가장 무겁고 가장 극적인 챕터.
혼자 남은 사찰, 얼어붙은 호수, 무거운 맷돌을 등에 지고 산을 오르는 남자. 대사가 거의 없다. 가장 고요하고,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챕터.
연출 — 공간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한다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점은 공간의 활용이다. 호수 위 사찰은 영화 내내 같은 공간이다. 배우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수십 년이 흐르지만 사찰은 그 자리에 있다. 그 불변하는 공간 안에서 인간의 생로병사가 펼쳐진다. 이 대비가 영화 전체의 축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문'의 사용이다. 사찰 안에는 문이 있지만, 벽이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고, 그냥 옆으로 돌아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항상 문을 통해 드나든다. 이것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규범과 경계를 지키는 행위를 상징한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문을 지킨다.
대사가 거의 없다. 전체 103분 중 대사는 아마 20분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이유는, 영상과 소리가 대사의 자리를 완벽하게 채우기 때문이다. 물소리, 바람 소리, 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 영화의 언어다.
솔직한 비판 — 아름다움 뒤에 있는 것들
첫째, 여성 캐릭터의 도구화다. 여름 챕터에 등장하는 소녀는 청년의 욕망을 촉발하는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그녀 자신의 내면이나 감정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겨울 챕터에서 아이를 버리고 사라지는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불교적 순환 서사를 위한 장치로 소비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둘째, 폭력 장면의 수위다. 가을 챕터의 특정 장면은 꽤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전체적인 정적이고 명상적인 톤과 온도 차이가 크다. 의도적인 충격 효과라는 걸 알면서도, 그 장면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셋째, 불교 서사를 모르면 놓치는 것들이 많다. 이 영화는 불교의 윤회, 인과, 업보 개념을 깊이 알수록 더 풍부하게 읽힌다. 사전 지식 없이 보면 "아름다운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끝날 수 있다. 이건 결함이 아니라 특성이지만, 진입 장벽인 건 사실이다.
마치며 — 이 영화는 당신의 나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20대에 보면 여름 챕터에 가장 오래 머문다. 30대에 보면 가을이 무겁게 와 닿는다. 40대, 50대에 보면 겨울 챕터에서 눈을 떼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는 당신이 어느 계절을 살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 영화가 된다. 그래서 한 번 보고 끝낼 수 없다. 10년 후에 다시 꺼내볼 영화라는 것을, 다 보고 나서 바로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