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세트테이프를 다시 듣다 — 스트리밍 시대에 아날로그가 돌아온 이유
워크맨과 오래된 테이프 한 박스, 그리고 다시 발견한 '듣는다'는 것의 의미
이사하다가 발견한 박스 하나
짐을 정리하다가 낡은 박스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카세트테이프 스물세 개와 소니 워크맨 한 대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쓰던 것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테이프들. 김현식, 들국화, 이문세,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팝 컴필레이션 테이프들.
처음엔 그냥 버릴까 싶었다. 그런데 손에 들었을 때 무게가 이상하게 익숙했다. 어릴 때 이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은 기억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오래된 물건이 주는 감촉인지 모르겠지만, 버릴 수가 없었다. 배터리를 사고, 벨트를 갈아끼우고, 틀어봤다. 소리가 났다. 조금 지직거렸지만, 소리가 났다.
처음 테이프를 틀었을 때의 그 소리 — '찰칵' 하고 덮개가 닫히고, 릴이 돌아가는 부드러운 소음, 그리고 0.5초 정도의 침묵 뒤에 음악이 시작되는 그 순간. 스마트폰으로 재생 버튼을 누를 때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다. 뭔가를 '시작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카세트테이프는 정말 돌아오고 있다 — 숫자가 말해준다
이게 그냥 나만의 향수가 아니다. 실제로 카세트테이프 시장은 몇 년째 성장 중이다. LP(바이닐)의 부활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카세트테이프는 그보다 더 조용하고 빠르게 돌아오고 있다.
스트리밍으로 충분한데 왜 테이프인가
- 1억 곡 즉시 접근
- 건너뛰기, 반복, 셔플 자유
- 음질 손실 없음 (하이파이 기준)
- 저장 공간 0
- 월 구독료 외 추가 비용 없음
- 앞뒤면만 존재, 선택 불가
- 빨리감기는 가능, 정확한 탐색 불가
- 약간의 노이즈와 변조 있음
- 물리적 공간 필요
- 재생 장비 별도 필요
카세트테이프는 스트리밍보다 모든 면에서 불편하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역설적으로 '듣는 행위' 자체를 특별하게 만든다. 스트리밍은 음악을 소비하게 하지만, 테이프는 음악을 경험하게 한다. 앨범 전체를 순서대로 들어야 하고, 건너뛸 수 없으니 전에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트랙을 그냥 듣게 된다. 그랬더니 그 트랙이 사실 제일 좋은 곡이었다.
지금 카세트테이프를 시작하려는 분께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소니 워크맨 WM-EX 시리즈를 찾아보자. 1~5만 원 선에서 상태 좋은 걸 구할 수 있다. 배터리 교체(AA 2개)만 하면 바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벨트가 늘어난 경우엔 3천 원짜리 교체 벨트로 직접 수리 가능하다.
국내 중고서점이나 온라인 중고거래에서 이문세, 김광석, 들국화 테이프를 500~2000원에 구할 수 있다. 해외 아티스트 테이프는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에서 검색해 보자. 테이프는 저렴할수록 오히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빈 테이프(블랭크 카세트)는 아직도 구매 가능하다. 직접 좋아하는 곡들을 녹음해 '믹스테이프'를 만드는 경험은 플레이리스트와 완전히 다르다. 스마트폰과 카세트 덱을 오디오 케이블로 연결하거나, 전용 USB 카세트 플레이어를 활용하면 된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한 점도 분명히 있다
첫째, 테이프는 열화된다. 오래된 테이프는 자성이 약해지거나 늘어져 있을 수 있다. 특히 고온 다습한 환경에서 보관된 테이프는 소리가 흔들리거나 끊기기도 한다. 아버지 테이프 중 두 개는 재생 중 테이프가 엉켰다. 연필로 릴을 돌려 되감는 고전적인 방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둘째, 음질을 기대하면 실망한다. 카세트테이프 특유의 '따뜻한 소리'는 엄밀히 말하면 약간의 왜곡과 노이즈다. 그걸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취향이라면 괜찮지만, 음질 우선주의자에겐 권하지 않는다.
셋째, 좋은 워크맨 구하기가 생각보다 까다롭다. 상태 좋은 워크맨은 중고 시장에서 점점 귀해지고 있다. 레트로 붐이 불면서 가격도 몇 년 전보다 많이 올랐다. 5년 전엔 5천 원에 살 수 있었던 걸 지금은 3만 원에 사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며 — 느린 것들이 주는 것
카세트테이프는 불편하다. 느리고, 약하고, 건너뛸 수 없다. 그런데 그 불편함이 어느 순간부터 매력이 됐다. 음악을 '틀어놓는' 것에서 '듣는'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었다.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 지직거림, 릴이 천천히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이 노래가 끝나면 무슨 노래가 나올지 기다리는 것. 그게 스트리밍이 줄 수 없는 무언가다. 빠른 것에 지쳤을 때, 느린 것이 가르쳐주는 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