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 리뷰 — 나를 세상에 낳은 죄로 부모를 고소합니다
나딘 라바키 감독 / 2018년 / 레바논 독립 드라마
| 원제 | Capernaum / كفرناحوم (카파르나훔) |
| 감독 | 나딘 라바키 (Nadine Labaki) |
| 개봉 | 2018년 5월 17일 (칸 영화제), 한국 2019년 1월 |
| 장르 | 드라마, 독립영화 |
| 상영 시간 | 126분 |
| 수상 |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노미네이트 |
| 주연 | 젠 알 라피아 (비전문 배우, 실제 난민 아동) |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 — 제목 한 줄 때문에
칸 영화제 소식을 찾아보다가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됐다. 줄거리 요약 한 줄이 이랬다. "열두 살 소년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법정에 고소한다." 그 문장 하나 때문에 멈췄다. 낳아준 것이 죄가 된다는 발상이 너무 낯설고 동시에 너무 날카로웠다.
국내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많지 않았다. 레바논 영화라는 낯섦, 비전문 배우들, 무거운 주제. 관람을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들이 겹쳐 있었다. 그러나 126분을 다 보고 나서 나는 왜 이 영화가 그해 칸에서 기립박수 15분을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 자인이 법정에서 판사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에서 나는 처음으로 영화를 보며 실제로 손을 멈췄다. "제가 원하는 건 어른들이 아이를 낳는 것을 멈추는 거예요. 아이를 돌볼 수 없다면." 열두 살이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의 무게가 너무 커서 잠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줄거리 — 태어난 것이 형벌인 아이의 이야기
레바논 베이루트 빈민가. 열두 살 자인은 출생신고도 안 된 채 태어나 부모의 손에서 방치되며 자랐다. 어느 날 여동생 사하르가 이웃 어른에게 강제로 팔려 가는 것을 막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자인은 에티오피아 출신 불법체류 이민자 라힐과 그녀의 아들 요나스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 뒤 자인은 칼부림 사건으로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리고 소년원에서 전화를 걸어 한 TV 방송국에 연락한다.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저를 낳은 죄로." 영화는 이 법정 장면을 현재 시점으로 두고, 자인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풀어간다.
— 법정에서 자인이 판사에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 제작 방식 자체가 영화다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장면들
라힐이 갑자기 실종된 후, 자인은 혼자 한 살짜리 아기 요나스를 돌봐야 한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열두 살 아이가 아기를 데리고 베이루트 거리를 헤매는 장면들. 스케이트보드에 요나스를 태우고 끌며 걷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슬픈 컷이다. 그 스케이트보드가 아이의 유일한 운송 수단이라는 게 웃기고 동시에 너무 아프다.
솔직한 비판 — 감동이 전부는 아니다
첫째, 감정을 너무 의도적으로 설계한다는 느낌이 있다. 이 영화는 관객을 울리기 위해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비전문 배우, 다큐멘터리 스타일 촬영, 극단적 상황의 연속. 어떤 장면들은 "이 장면을 보고 울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라는 압박처럼 느껴진다. 감동의 진정성과 감동의 설계 사이 어딘가에 이 영화가 있다.
둘째, 레바논 사회의 복잡한 구조적 문제가 단순화된다. 빈곤, 난민, 아동 착취 문제가 '나쁜 부모 대 순수한 아이'의 구도로 좁혀지는 순간들이 있다. 실제로 자인의 부모도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점이 영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지만, 그것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셋째, 126분이 다소 길게 느껴지는 구간이 있다. 중반부 자인과 요나스가 거리를 떠도는 장면들이 반복되면서 서사의 흐름이 느려지는 구간이 있다. 감독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편집을 10~15분 더 줄였으면 긴장감이 유지됐을 것 같다.
마치며 — 이 영화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좋았다
좋은 영화와 편한 영화는 다르다. 가버나움은 좋은 영화다. 그리고 절대 편한 영화가 아니다. 보는 내내 불편하고, 끝나고도 불편하고, 며칠 뒤에도 자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영화가 끝난 뒤 한참 동안 "나는 지금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그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가 몇 편이나 있을까. 레바논에서 시작된 이 작은 독립영화가 그해 가장 크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