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무드 포 러브 리뷰 — 말하지 않아서 더 아팠던 영화
왕가위 (王家衛) 감독 / 2000년 / 홍콩 로맨스 드라마
| 원제 | 花樣年華 / In the Mood for Love |
| 감독 | 왕가위 (王家衛, Wong Kar-wai) |
| 개봉 | 2000년 5월 20일 (칸 영화제), 한국 2001년 |
| 장르 | 로맨스, 드라마, 아트하우스 |
| 상영 시간 | 98분 |
| 수상 |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남우주연상 (양조위) |
| 주연 | 양조위, 장만옥 |
왜 지금 이 영화를 꺼냈는가
비가 오는 날 밤, 딱히 볼 것도 없고 무언가 묵직한 걸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영화 목록을 한참 뒤지다가 오래전에 '나중에 꼭 봐야지' 하고 찜해 뒀던 제목을 발견했다. 「인 디 무드 포 러브」. 2000년 영화, 왕가위. 칸 영화제 수상작. 이 세 가지 정보만으로 충분히 클릭할 이유가 됐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30분은 지루했다. 대사는 극히 적고, 카메라는 느리게 움직였다. 두 주인공이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고, 서로를 피하고, 또 마주치는 장면이 반복됐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98분이 끝나고 나서 한동안 그 느린 음악이 귓가에 맴돌았다. Nat King Cole의 「Quizás, Quizás, Quizás」. 스페인어 가사의 뜻도 몰랐는데 왜 그렇게 슬프게 들렸는지. 나중에 찾아봤더니 "perhaps, perhaps, perhaps"라는 뜻이었다.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이 영화의 모든 것이 그 단어 안에 있었다.
줄거리 — 고백하지 못한 두 사람의 이야기
1962년 홍콩. 무선통신 회사에 다니는 차우(양조위)와 수비(장만옥)는 같은 날 같은 건물의 이웃집으로 이사 온다. 두 사람은 각자 배우자가 있지만, 어느 날 자신들의 배우자가 서로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가고, 점점 가까워지지만 절대로 그 선을 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는 달라야 해." 그 다짐이 두 사람을 묶고, 동시에 가로막는다. 이 영화에는 사실상 사건이 없다. 오직 감정만 있다.
"Those were the days, my friend. We thought they'd never end."
연출 — 느림이 무기가 되는 순간
왕가위의 연출은 한마디로 '부재의 미학'이다. 두 배우자는 영화 내내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목소리만 들리거나, 뒷모습만 보인다. 관객은 끝까지 그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이건 의도된 선택이다. 영화는 바람 피운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받은 두 사람에게만 집중하겠다는 선언이다.
슬로우 모션 장면도 인상적이다. 장만옥이 좁은 계단을 내려와 국수를 사러 가는 장면. 그녀의 치파오와 하이힐 소리, 그리고 양조위와 스치는 순간들이 매번 극도로 느리게 표현된다. 처음엔 "왜 이렇게 자주 쓰지?" 했는데, 나중에 알았다. 그 장면들이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그 몇 초를 늘여서 관객에게 최대한 오래 느끼게 한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공간은 아파트 계단이다. 두 사람은 이 공간에서 수십 번 스친다. 매번 슬로우 모션, 매번 같은 음악. 처음엔 같은 장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볼 때마다 두 사람의 거리가 미묘하게 변한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시선이 길어지고, 멈추는 시간이 늘어난다. 대사 없이 관계의 진전이 느껴진다.
영화 후반, 차우는 앙코르와트의 낡은 돌벽 구멍에 무언가를 속삭이고 풀잎으로 막는다. 캄보디아의 오랜 풍습에 따르면, 말 못할 비밀은 나무 구멍에 속삭이고 풀로 막으면 영원히 묻힌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 침묵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크게 울렸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 — 품위 있게 참는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비극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절제'다. 두 사람은 사랑한다. 그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들은 배우자와 똑같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참는다. 끝까지 참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질문이 있다. 그 절제가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잃었다.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이 삶에서도 옳은 선택이었는지, 영화는 끝까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 판단을 관객에게 떠넘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오래 생각하게 됐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말하지 못하고 삼켰던 것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배려인지, 아니면 그냥 용기 없음의 다른 이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왕가위는 그 경계 위에 카메라를 세워뒀다. 그리고 아무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오래 남는다.
솔직한 비판 — 이 영화가 모두에게 맞지는 않는다
첫째, 서사의 부재가 진입 장벽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가 없다. 사건이 없고, 반전도 없고, 카타르시스도 없다. 감정의 밀도가 높은 영화를 즐기는 관객에게는 극강의 경험이지만, 이야기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98분이 고역이 될 수 있다. 나도 전반부 30분은 솔직히 집중하기 힘들었다.
둘째, 반복의 위험성이다. 슬로우 모션과 동일한 음악의 반복은 의도된 연출이지만, 그것이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는 관객의 인내가 필요하다. 왕가위를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왜 똑같은 장면을 또 쓰는 거야"라고 느낄 수 있다. 이건 감독의 스타일을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셋째,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이다. 수비(장만옥)는 영화 내내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고, 떠나보낸다. 그녀의 내면이 무엇인지 영화는 충분히 보여주지 않는다. 왕가위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남성의 시선과 욕망 안에서 정의된다는 비판은 이 영화에서도 유효하다. 장만옥의 연기가 워낙 훌륭해서 덮이지만, 각본만 놓고 보면 수비는 상당히 평면적인 캐릭터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아트하우스 영화에 익숙한 분
- 서사보다 감정과 분위기를 즐기는 분
- 왕가위 입문 또는 팬
- 조용하고 느린 영화가 취향인 분
- 1960년대 홍콩 미학에 관심 있는 분
- 명확한 플롯을 원하는 분
- 결말이 시원하게 마무리되길 바라는 분
- 왕가위 스타일이 낯선 분 (다른 작품 먼저)
- 가벼운 로맨스 영화를 찾는 분
- 인내심 있는 관람이 어려운 분
마치며 —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다르다
처음 봤을 때는 "아름답지만 답답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봤을 때는 그 답답함이 정확히 이 영화가 의도한 감각이었다는 걸 알았다. 말하지 못한 것들, 닿지 못한 손, 비어있는 자리. 왕가위는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관객 자신의 기억이 채워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볼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된다. 그것만으로 걸작이라 부를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