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관이 많을수록 볼 수 있는 영화도 많아질까요?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멀티플렉스가 전국을 장악한 지금, 오히려 특정 블록버스터만 수십 개 관을 채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관극장 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영화관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생깁니다.
상영관 구조: 하나의 스크린이 만든 풍경
단관극장(單館劇場)이란 하나의 건물에 하나의 상영관과 스크린만을 갖춘 영화관을 뜻합니다. 지금의 멀티플렉스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일 수 있는데, 20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이것이 극장의 표준적인 형태였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상영 중인 영화 제목을 직접 손으로 그린 대형 간판이 걸렸고, 그 간판 하나가 동네 문화의 지표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예전 단관극장 사진들을 찾아보다가 그 풍경에서 묘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상영 시간이 마음에 안 들면 한 시간 뒤 회차를 예매하면 그만이지만, 당시에는 극장이 정해 준 시간표에 몸을 맞춰야 했습니다.
반면 멀티플렉스(Multiplex)란 한 건물 안에 복수의 독립된 상영관을 운영하는 영화관 형태입니다. 단순히 스크린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각 상영관이 서로 다른 작품을 동시에 돌릴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생기고, 운영자 입장에서는 흥행에 따라 상영관 크기와 횟수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볼 때 습관적으로 먼저 확인하는 것이 상영 시간과 교통편인데, 이 습관 자체가 멀티플렉스가 만들어낸 행동 패턴입니다.
단관극장 시절의 또 다른 특징은 입·퇴장 방식에 있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관객 전원이 한꺼번에 입장하고, 상영이 끝나면 함께 빠져나오는 구조였습니다. 지금처럼 상영 중간에 조용히 들어오거나 엔딩 크레딧 전에 일어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장면을 본다는 집단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셈입니다.
다양성의 역설: 스크린이 많아도 볼 게 없다
멀티플렉스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편의성입니다. 온라인 예매 시스템, 무인 발권기, 사전 좌석 지정, 식음료 판매까지 하나의 서비스 체계로 묶여 있습니다. 저도 당일 아침에 핸드폰으로 예매하고 상영 5분 전에 도착해서 바로 입장하는 방식에 완전히 익숙해졌습니다. 영화 관람 자체보다 이런 동선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스크린 수가 곧 영화 다양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상위 3개 작품이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현상이 주말 개봉 시즌마다 반복됩니다.
스크린 독과점(Screen Monopoly)이란 바로 이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특정 영화가 멀티플렉스 내 대다수 상영관을 독식해 다른 작품이 상영 기회 자체를 잃는 구조를 뜻합니다.
단관극장이라고 다양성 면에서 유리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 편의 흥행 실패가 극장 전체 운영에 직격탄이 됐습니다. 하지만 단관극장은 극장주가 상영작을 직접 고른다는 점에서, 지역 관객의 취향이나 감독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를 기준으로 프로그래밍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필모그래피란 특정 감독이나 배우가 참여한 작품 전체의 목록을 의미하며, 단관극장은 이를 기준으로 회고전이나 특별 상영을 기획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습니다.
두 형태의 차이를 항목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상영 편성 방식: 단관극장은 한 작품을 일정 기간 집중 상영, 멀티플렉스는 복수 작품을 동시 편성하되 흥행작 중심으로 상영 횟수를 조정
- 수익 구조: 단관극장은 단일 작품 흥행에 전적으로 의존, 멀티플렉스는 복수 편성으로 위험 분산이 가능하지만 식음료·주차 수익 비중도 높음
- 관객 선택권: 단관극장은 시간대 선택 불가, 멀티플렉스는 동일 작품을 여러 시간대에 편성해 선택 폭 확대
- 영화 다양성: 단관극장은 편성 자체가 적지만 큐레이션(Curation) 기반, 멀티플렉스는 편성은 많지만 흥행 쏠림 현상이 발생
큐레이션(Curation)이란 다양한 콘텐츠 중에서 특정 기준과 의도를 가지고 골라내는 행위를 뜻합니다. 스크린이 많아도 그 기준 없이 상업성만 따라가면, 관객이 볼 수 있는 영화의 실질적 폭은 오히려 좁아질 수 있습니다. 이건 제가 자료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관람 문화: 편리함이 지운 것들
지금의 멀티플렉스에서 영화 관람은 쇼핑이나 식사와 자연스럽게 엮인 여가 활동이 되었습니다. 상영관이 대형 쇼핑몰 안에 입점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건물에 들어갔다가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나오는 동선이 일반화됐습니다. 저도 영화 후 같은 건물에서 밥을 해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는데, 이게 사실 꽤 최근에 만들어진 관람 문화라는 점을 자료를 보면서 새삼 실감했습니다.
반면 단관극장이 활성화되던 시기에는 극장 이름 자체가 지역의 랜드마크(Landmark) 역할을 했습니다. 랜드마크란 특정 지역에서 방향을 잡거나 약속을 잡을 때 기준이 되는 장소를 말합니다. "OO극장 앞에서 보자"는 말이 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약속 장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통용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극장 이름이 하나의 지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이었던 셈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1970~80년대 국내 단관극장 수는 전성기에 수백 곳에 달했으나 멀티플렉스 보급이 본격화된 2000년대 이후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사 중심의 체인 멀티플렉스가 채웠습니다. 편의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지역마다 달랐던 극장 분위기와 큐레이션은 사라졌습니다.
이 지점이 저에게는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멀티플렉스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같은 구조, 같은 시스템, 같은 편성이 반복되면서 영화관이 가질 수 있는 개성이 희박해졌다는 뜻입니다. 단관극장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지만, 그 시대에 있었던 무언가를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멀티플렉스의 효율적인 시스템은 분명히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관의 진짜 역할이 편리한 영상 재생 장치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독립영화관이나 예술영화관이 멀티플렉스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스크린 수가 아니라 관객에게 얼마나 폭넓은 선택과 기억에 남는 경험을 제공하는가가 영화관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지역 예술영화관의 상영 일정을 한 번쯤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지금과는 다른 관람 경험을 만날 수 있습니다.
